인터넷을 기웃거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제주도행 손에 비행기표가 쥐어져있었다. 역시. 충동구매는 못할것이 없다. 아직 날짜는 두달가까이 남았고. 뜨거운 여름날 주변에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을 하나씩 보내며. 칼날을 갈았다.
난. 두달뒤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시원해지면 여행을 떠나리라. 그대들이 사람에 치여 힘들게보냈던 휴가를 난 바람따라 흘러다니고 오리라.
그렇게 두달뒤 제주에 도착했다. 하늘은 낮게 내려 센치한 비를 뿌리고, 기분좋은 바람도 있었으나. 두 아이의 무게감로 흘러다닐 상황은 못되었다.
그래도 어쨋건 난 제주도에 도착했다.
오후 비행기를 탔더니 시간이 늦어 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도착했다는 설래임을 느낄여유도 없이. 딸래미가 유모차에서 벗어던진 신발을 찾느라 공항에서 한바탕 쑈를하고는 진이 좀 빠졌다. 마눌도 똥씹은 표정이… 아.. 갑자기 집에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럴땐 빨리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렌트카를 찾아서 서귀포 방향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다.
숙소는 금호리조트. 체크인하고, 이미 어두워졌으므로 방에 들어가면 애들 데리고 다시 나오기 힘들어질꺼 뻔하니까 밥부터 먹고오자. 흑돼지를 먹겠다는 마눌에게 밥집 검색을 맞겼더니 중문쪽에 돼지집을 찾아낸다. 좀 먼데 마눌 기분이 좀 꾸리해 보이니 그냥 다녀오기로하고. 근데 막상 편도 30분 거리. 맛도 그냥 그렇고, 비싸긴 드럽게 비싸고, 왔다갔다 시간도 많이 버렸고.. 그닥 기분좋은 저녁은 아니었다.
어쨌든 배는 채웠으니 숙소로 복귀.
일박에 만원씩이나 더주고 바다쪽 방을 얻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창밖 풍경이 좋다. 솨악 거리는 파도소리도 엄청난 포스가 느껴진다. 방도 거실도 넓찍하고.
콘도는 노인네같아서 별로 안좋아하는데. 여기는 맘에 든다.
애들 재우고, 그래도 첫날인데… 이러면서 마누라랑 발코니에 테이블깔고 술상을 차렸다. 안주는 편의점에서 조달했더니 좀 부실하다만.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니. 그냥 이걸로 됐다. 소주 일병후 사망.
다음날도 비가온다. 발코니에서 내려보이는 비오는 바다가 참 운치있다. 하지만 아직 인간될라면 한참 남은 꼬맹이 둘을 데리고 저 운치속으로 들어가는건 거의 자살행위와 유사하므로.. 오늘은 실내를 서성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건희가 좋아하는 물고기 구경하러 성산에 있는 아쿠아플라넷으로 간다.
가는길에 표선에 들렀다. 춘자살롱. 허름한 멸치국수집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역시..맛은 꽤 있더라.
아쿠아플라넷.
여긴 순전히 건희 핑계로 들렀다가 아.. 내가 큰 감동을 먹어버렸다. 이런 큰 수조관은 처음이다. 바다가 버리위를 돌아 감고 바다가 대형 스크린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는. 가오리에 꽂혀버렸다. 큰 분주함없이 그저 느릿느릿 흘러가는 가오리. 그 몽롱한 움직임을 따라 같이 걸으며.. 신비로움을 느껴버렸다………………………
건희도 기분이 매우 좋다. 이리저리 손가락질해가며 뛰어다닌다. 그러다 나중에는 유모차에 잠들어 그렇게 노래부르던 고래. 정확히얘기하면 돌고래를 아쉽게도 보지 못했지만. 줄기차게 떠들던 팽귄과 상어와 쥐가오리와 쏠뱅감팽과 꽃게와 그리고 아빠도 잘 알지못하는, 하지만 건희는 수도없이 반복해서 봐왔던 그 책속의 바닷속 친구들을 거의 모두 만난것이다. 잘왔다 싶었다.
아쿠아플라넷을 나오는길에 광치기해변에 잠깐 차를 세웠다. 아직 비는 추적추적오고있고. 이 바다와 저 성산일출봉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미안해서. 이 바람에 담배연기는 좀 풀어줘야했다. 이쪽에서 바다너머로 보이는 일출봉이 참 멋있구나. 사진한장을 종용이에게 보냈다.
- 내가 그래서 우울해진거야…
이풍경을 보면서 자랐다는 녀석이 하는 대꾸다.
애들이 졸린것 같다. 더 칭얼대기 전에 재워야겟다. 이럴땐 차량운행이 짱이다. 성산을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움직이다 보니.. 역시. 그새 잠이 들었다. 다시 표선을 넘어가면서 황량한 해안가에 홀로 외로운 카페를 하나 찾아냈다. 카페앞 발코니에 바짝 차를 붙이고, 애들 깨지않게 조심조심 내렸다. 잠깨면 우는 소리 들릴테니 살짝 창문은 내려놓고. 처마밑에 앉아 커피를 한잔 들었다. 이제서야. 제주와서 처음으로. 평화롭다.
여전히 비는 추적거리고. 솨악 거리는 파도소리도 기분좋다. 다리를 뻗어 발코니 난간에 얹고 의자에 깊숙히 묻혀서 마누라랑 한참 히히덕 거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3일 뭐하면서 놀지 계획도 짜고. 오늘 저녁거리 얘기도 하고. 참 편안한 한시간이었다.
엥~엥~~ 한놈이 깼다. 또다시 전쟁의 시작.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데. 그냥 먹기로 했다. 닭샤브..라는데 어디 티비에 나왔었다고. 마눌이 꼭 먹어야한댄다. 먹어주기로 했다. 대신 식사하고 서귀포 시장 구경하기로. 식당은 제주 쪽이다. 한라산 오른쪽 허리를 타고 건너가는데 적지않은 시간이 걸렸다. 이 식당 유명하긴 한가보다. 손님이 꽤 많다. 아직 밥때가 좀 이른데 말이다. 얇게 뜬 닭가슴살 한접시가 날로 나온다. 같이 준 국물에 담궈 먹으랜다. 먹고나니. 가슴없는 백숙이 나온다. 좀전에 먹은 샤브가 난도질 당한 이녀석 가슴인가보다. 먹고나니 닭죽 준다. 맛도 괜찮고 잘먹었다만.. 특별한 맛은 아니다. 그래도 국물은 꽤 시원하드라마는.
밥먹고 나오니 어둡다. 해가 많이 짧아지긴 했나보다. 이번엔 서귀포시장으로. 또다시 산허리를 타고 내려온다. 비가 꽤 굵어졌는데 뚜껑 덮여있는 시장이라 문제없다. 주차하는 아빠만 잠깐 비맞으면 된다. 여기는 확실히 관광지의 시장인가보다. 기념품 파는데가 많고, 초콜렛도 많다. 여행와서 기념품 사가는거 영 촌스러워서 안하는데. 이번엔 사야한다. 유치원. 쩝. 그래서 초콜렛도 사고. 회도 한사라 사고. 어제의 부실한 안주로 인하여 은근 데미지를 받은터라. 오늘은 꼭 회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숙소로 복귀. 애들 재우고. 또 마누라랑 일병. 마눌님은 맥주. 난 또 한라산. 오늘은 하얀거. 근데. 허 참.. 이 하얀거 옛날 소주 맛이 난다. 오래전 그 쓰급고 목에 턱턱 걸리던 그 소주맛 말이다. 이맛이 반가워서 술 잘넘어간다.
다음날 오전은 숙소에서 뭉개기로했다. 콘도 일층에 워터파크가 있는데 태어나서 아직까지 한번도해보지 못한 물놀이를 준희에게 선물하는걸로. 워터파크는 아담하다. 좀 큰 목욕탕 정도. 노천탕 몇 개 있고. 근데 사람이 없다. 아기 데리고온 한 가족 저쪽에서 놀고있고. 그리고 우리밖에 없다. 조용해서 참 좋다. 나올때보니 초딩 단체가 때로 몰려들어가던데. 오전에 일찍 오길 잘했다. 준희는 처음에 물을 좀 무서워하는가 싶더니 금새 좋아라 한다. 건준희 튜브에 태워서 이리저리 댕기며. 잘 놀았다. 그러다 준희가 물에 얼굴한번 쳐박고, 건희가 지 가슴밖에 안오는 물에 빠져서 한번 허우적거리고. 아.. 물이 쉽지는 않은거구나. 이런거 배웠겠지. 녀석들은 죽겄다고 우는데. 그걸 보는 아빠엄마는 우껴 죽는다. 귀여운 자슥들. 딱 요 순간은 참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점심은 갈치찜. 몇해전 건희가 준희만할때.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왔던 그 갈치집을 또 찾아갔다. 서귀포시내 사거리식당… 이었나. 맛은 있으나 만만치않은 가격에 비해 양이 좀 적다. 그러고보니 저번에도 같은 생각을했던 것 같은데. 쩝. 식당앞을 아장거리며 준희가 참 잘논다. 또 그러고보니 저번엔 건희가 이 식당앞에서 무거운 물통 낑낑 들고다니면서 한참 잘놀았었다. 긴 시간을 두고 같은 장소에 오는게 이런 재미가 있다.
설녹원도 그렇다. 첫 제주여행에 마누라 불룩해진 배로 설록원 창가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다음번 제주 찾았을때 같은자리에서 이번에는 세명이 찍은 사진이 있고, 그래서 같은 장소에서 이번에는 네명이 찍고자 했으나. 결론적으로 시간에 쫒겨 못갔다. 아쉽다. 담에 다시 오는걸로.
오후는 에코파크로 갔다. 아. 오늘 저녁을 닭을 먹을껄. 어제 먹었던 그 닭샤브 말이다. 에코파크가 그집 옆에있더라. 이동이 매우 비효율적이다. 오늘도 산허리를 넘었다. 가는길에 햇살 비듬한 산길이 계속 눈을 잡는다. 어제 넘어올때는 너무 어두워서 이런 풍경이고 뭐고 없었는데. 좋은길이었구나. 구름이 넓부러진 하늘에 비스듬한 볕도 너무 좋고. 물론 혼자 탄성하고있었다. 찡얼대는 애시끼들이랑 씨름하는 마눌이랑. 옆에서는 한참 정신이 없다.
에코파크는. 정신없다. 입구부터 관광버스가 빼곡하다. 주차장도 만원이고. 아썅. 이건아닌데. 빙빙돌다 겨우 구석자리에 주차한다. 그러고보니 주말이구나. 에고.
이곳은 평일에 넉넉히 시간을갖고 천천히 여유를 부릴곳이지 이렇게 늦은 오후시간에 사람들에 밀려들어와 부내끼다 쫒겨갈곳은 아니더라. 장소는 좋았으나 시간이 안맞은거야. 그렇게 사람에밀려 기차를타고, 시간에 밀려 쫓기듯 걷고. 그닥 좋은 경험은 못되었다.
참 좋은 공원은 맞는데 말이다. 아쉽다~
저녁은 큰맘먹고 해물뷔페. 샹그릴라. 또 중문이다. 시간을 예약해놓은터라 맘이 급한데 길이 더 멀다. 해는 에코파크 나오면서 떨어졌고. 어두운 산길을 부지런히 달렸다. 시간에 쫓기지말자고 해놓고 하루종일 정신이 없다. 머 이러니?
부페는 만족스럽다. 음식 종류는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시시하지가 않다. 그중 특히 집중한 딱 두가지. 결코 질이 떨어지지않는 대게와 광어회. 부페라고하면 생각나는 그런 허접한 맛은 분명 아니었다. 두가지로 차곡차곡 배를 채웠다. 물론 여기서도 우리 아이들은 차분히 앉아 순순히 밥을먹어주지는 않았다. 아. 유투브와 뽀로로 아니었으면 먹지못했을 그 수북한 음식들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크롱에게 고마워하며... 우리가 가게문 닫고 나온다. 숙소로 복귀. 금호 마지막밤이다. 아쉬워서 또 간단히 술한잔.
다음날 아침. 부지런히 짐을싸고. 오늘은 우도들렀다 다음 숙소로 이동이다. 어찌어찌 공짜로생긴 금호. 하루가 모자랐던거다. 몇일간 살았다고 떠날라니 좀 아쉽네. 이제는 눈에 익은 발코니 너머 바다인거다. 들락거리며 눈길가던 반대편 한라산도. 안녕~
가는길에 바닷가 허름한 식당에서 아점을 해결하고. 애덜 잠들었길래 또 가까이 차세울수있는 카페 발코니를 찾아 커피한잔 시켜놓고 한참 멍때리다가. 참. 난 맥주였지. 제주온지 4일만에 날이 맑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성산봉이 보이는 호젓한 분위기에 한참 멍때리다보니. 또 늦어버렸다.
겨우겨우 2시에 우도들어가는 배를 탔다. 나오는 막배가 5시 반이라는데. 이 먼길을 달려와 우도에서 우리에게 주워진 시간이. 고작 3시간정도. 엉덩이 무거운 나를 탓해야지 우짜겠냐..
전기카트를 한대 빌렸다. 세시간에 3만원 이었던것같다. 좀 비싸지만 시간이없으니 어쩔수없다. 꼬깃꼬깃 쑤셔넣으면 애둘하고 어른둘 들어간다. 그래도 덕분에 그 짧은 시간에 우도 일주가능했다.
풍경구경하며 딸딸딸 달리다 서다하면서. 하고수동에 내렸다. 아... 제주 바다는. 특히 넓은 백사장이 있는 바다는 다 이모양이냐... 너무 좋다는 얘기다. 이 넓은 백사장에 감질나도록 얕게 덥힌 바다라니. 백사장이 계속되는 저기까지는 에메랄드색이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이럴때 쓰기위해 아껴뒤야하는거야.
건희랑 발을 담궈본다. 마눌은 안들어온다. 준희도 안들여보낸다. 발씻기 귀찮댄다. 맘대로 하시고. 건희랑 아빠는 나가는 파도 쫓아 들어갔다가 들어오는 파도에 쫒겨나오는 그 유치한 놀이를 한참했다. 이자식.. 좋아라한다. 그러고있는데 엄마는 준희데리고 사라졌다. 백사장 밖. 카페. 땅콩아이스크림을 드시겠단다. 뭐. 오래지않아 부자도 합류. 카페 수돗가에서 발을씻고...
아슈크림은 착한 가격은 못된다만. 맛은 있다. 고소하다. 땅콩잼도 맛있고. 몇통샀다. 나에게 금호를 무상으로 선물해준 아저씨한테 뭐좀 사줘야할텐데..생각하고있던 차에 땅콩잼이 딱걸린거다. 이쁘게 포장까지. 그러는 사이 준희는 알바언니들한테 또 먼가를 얻어먹고있다. 쪼금 이쁘장하게 생겼다고 가는데마다 까까 정도는 얻어먹는다. 카페를 나오는데 준희랑 사진 한번 찍자는 이상한 아줌마들도 있었고.
그나저나 하고수동에서 너무 지체했다. 다시 출발.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다음은 계속 지나쳤다. 우도봉 앞에 잠깐 섰는데. 이 숨막히는 풍경을 감탄하기엔 사람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모자란다. 저기 우도봉을 올라봐야하는데. 걸어서 올라봐야하는데. 아쉽다. 아쉬워.
또다시 딸딸딸 고개를 넘어. 산호해수욕장은 그냥 카트안에서 보고 지나간다. 바다너머로 보이는 일출봉. 여긴 이런 풍경이 있구나. 딸딸딸.
겨우 시간을 맞춰 카트 반납하고. 배에 올랐다. 우도 여행은 이렇게 짧게 끝났다. 오는 배 난간에 매달려 바다를 내려보며 건희랑 대화를 한참 했던 것같은데.. 바다인데 왜 고래와 상어가 없냐고 했고. 배허리에 이는 물보라를 보며 바다에는 비누가 왜이렇게 많냐고도 했던것같다. 애들의 기발함이란.. 귀여운 자슥.
오늘 숙소는 내일의 수월한 철수를 위해 공항 가까이로 간다. 애월. 곽지해변. 성산에서는 꽤 먼거리다. 시간은 벌써 6시인데. 오늘 저녁은 첫날 찝찝하게 먹었던 흑돼지 제대로 먹기로했다.숙소에서 숯불펴서. 시간이 없다. 또 부랴부랴 달린다. 오늘은 오후 내내 달리는 것같다. 진짜 이렇게 바쁘고싶지 않았는데. 쩝.
가는길에 해가 기울더라.
곽지해변에 거의 다다라서 하나로마트 간판을 보고 차를 세웠다. 고기와 술과 기타 부수적인 숯불구이 준비물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차를 세우고 보니 바다가 시뻘겋다. 마지막 저녁에 길 위에서 볼 수밖에 없는. 매우 아쉽고 아름다운 붉은 노을이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붉다.
오늘 숙소는 캐러반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예상은 적중이다. 두마리 다 신이났다. 자리는 좀 좁지만 녀석들도 나도 마눌도 불편하지는 않다. 이제 하늘은 완전히 어둡고 우리는 먹어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 캐러반 바로 앞에 테크가 깔렸고. 테이블도 있다. 사방은 투명 호루로 막혀서 바람 걱정도 없고. 편하네.
아저씨가 피워준 불에 고기를 굽고. 그 고기가 내새끼 입으로, 내 마누라 입으로 들어가고, 내입으로 술이 들어가고. 큰놈이랑 뭔가 놀이를 하며 한참 낄낄거리며 재미있었다. 알딸딸하게. 술이 꽤 들어갔다. 기분이 좋다. 아이들 재우고. 또 마누라랑 그자리에 앉아 이번 여행 어쩌니저쩌니하며 밤이 깊었다. 필받아서 무한반복으로 돌려놓은 피네의 서울이 이 기분을 끝나지 않게 할 것만 같다.
그 밤의 마무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많이 취했다.
다음날 아침. 커튼을 걷으니 머리위로 볕이 떨어진다. 이불속에서 밍기적 거리는데 준희는 아쿠아리움에서 데려온 물개인형을 옆에 끼고 멍멍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아침밥 대충 때우고. 엄마가 짐정리 사이 애들이랑 바닷가로 나섰다. 낮에 보니 과물해변 끝나는 곳에 우리 숙소가 있더라. 마지막 바다가 아쉬워 또 파도쫓기 놀이를 한참했는데. 아차. 시간이 왜이러냐?
이때부터 정신이 없다. 짐 대충 때려싣고.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아 공항에 도착해서 달리고 달려. 겨우 비행기에 올랐다. 역시 또 라스트 페신져.
자력으로는 지 밥숫가락도 뜰 능력도 없는 놈 하나, 그리고 그럴 의지가 없는 놈 하나…를 데리고 시간에 쫓겨가며 징징댐에 쫓겨가며. 참 힘든 여행이었다. 그래도 우리 네식구만의 여행이라 할만한 첫 외출이라 좋기도 했고. 어쨌든 시간이 좀 지난 지금 생각하니. 짠하게. 아련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