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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건 슬픈 일이다.

머리가 희어지는 단지 어떤 암시같은 것일 뿐이다. 미간과 눈가에 생긴 골이 피부에 고착화 되는 것도 단지 징후일 뿐이다. 신진대사가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입으로 들어온 에너지는 온전히 배출되지 못하고 곳곳에 퇴적층 처럼 쌓인다. 잠깐 긴장을 놓은 사이, 짧은 사이. 주변에 기름끼가 끼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중 가장 악질적인 놈이 배둘래에 붙은 놈들인데, 한번 붙은 녀석들은 그냥 평생 데리고 사는 외에 방도가 없다. 하긴 그 평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단어의 용도만큼이나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어쨋든 남은 말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양보다 기분 나쁜건 재질이다. 푸석해진 표면과 뭐하나 들어내지 못할것 같은 물렁해빠진 근육들.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면 온통 자글자글하게 늘어진 껍데기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팔다리는 점점 얇아져가고 허리는 점점 휘어간다. 특히나 앉았다 일어나보면 구부정해진 허리 제대로 피는데 점점 많은 시간이 든다. 이젠 서있는 자세도 바르지 못한게. 애써 자세를 가다듬어 늙음을 숨길 수 있는 시기도 지나가고있다. 

 

늙는건 슬픈 일이다.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보다 슬픈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진지했던 열정이나 격렬한 사랑 같은 고상한 감정은 고단한 일상에 서서히 좀먹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원인과 동기가 없어진 고집과 집착만이 남아 뭘하는지 왜하는지도 모르는채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한쪽 방향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붙들고있다. 사실 겁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시행착오를 감당할 용기도 능력도 시간도 없다. 그저 숨쉬고 있는 현재를 만들어준 과거의 습관들이 옳다고 믿는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지금이 행복한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지금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어쨋건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럭저럭은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래서 자의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게 점점 힘들어진다. 그리고 남은 시간과 능력이 줄어들수록 그런 의지도 비례해 사라져간다. 그러니 내가 할수 없는 미래보다 내가 있었던 과거에 점점 집착할 밖에 없다. 사실 노인에게 과거는 두번다시 갖지 못할 애달픈 사랑이자, 철저하고 완벽하게 포기해야할 그러나 결코 놓아줄수 없는 미련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래란 견뎌내야할 대상이지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늙는건 슬픈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귀해진다. 그래서 현재 남은 사람이 귀하다.

젊었을 때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는 일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리적 거리 때문에, 심지어는 귀찮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을 떠나 보냈고 반대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가까이 거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는 이가 가는 이보다 적어지고, 이제는 이들을 만났고 좋아하게 되었는 지도 잊어버리게 때쯤이 되면 그렇게 주변에 남은 몇안되는 사람들 서로의 인간적 매력보다는 서로를 외롭게하는 서로로서 소중해진다. 물론 소중함의 표현이라는게 그저 만남을 유지한다는 사실 정도지만. 그러다 어느날 나도 곧 가야할 기약없는 그길을 누군가 떠났다는 얘기를 듣게되면, 이제 한모금 마신 막걸리잔을 실수로 엎어버린 것처럼 무척 아쉽고 허전하고 쓸쓸하다.

가족은 귀하다. 피같고 살같던 내새끼들. 나는 못 먹을 지언정 나는 고될 지언정 새끼들은 배불리 먹이고 편히 살도록 하는데 반평생 이상을 공들였다. 그런 자식들이  가정을 만들고 제 새끼가 만들어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 떨어져 나간다. 언제나 그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종용하고, 번듯한 성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요구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독립을 마주할 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잃는 서러움도 마음 가장 구석진 곳에는 실제하기에. 부모는 늘 자식의 결혼식장에서 운다

그러다 내가 늙고 아이같던 내새끼가  온전한 어른이되어, 보살핌을 베풀고 받는 위치가 서서히 바뀌어갈 , 그때 귀한 아이들에게서 어렴풋한 무시나 직접적인 반감을 받았을 때. 가장 소중히 해왔던 것들이 저들의 몇 마디에 찌질하고 천박한 것으로 전락해 버릴때. 그럴 때의 무기력감이란... 나의 과거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것에게서 나를 부정당하면. 나의 과거가 흔들리고, 현재의 내가 의미없어진다. 인격의 본질이야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를 과거의 축적이 만든 현재의 습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내 전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가 늙었구나.하고 서글퍼지고, 내 삶이 의미없었구나.하고 깊이 낙심한다.


늙는 건 여러 가지 이유로 슬픈 일이다. 사실 이 모든 슬픔의 원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 어떤 희망도 남기지 않는 모든 사람의 유일한 결말. 죽음. 

그 비극의 바로 앞에서. 

너무도 정확히 그 결말을 알고 있으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이를 부정하거나 피할 수 없기에, 

노인의 슬픔은 온전한 절망이다.  










▣  20150425_청계천 산책 - 카테고리 없음 - 2015. 7. 10. 13:03

토요일 시청 집회 동원이다, 잠깐 짜증나다가. 잘됐다 싶었다.

마눌이랑 애들이랑. 간만에 서울구경 시켜주자. 피할수 없으니. 즐겨야지.

 

버스를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시청을 걸어가려 했으나. 역시 주말이라 집회가 많은 가보다. 버스가 서울역을 못들어가겠단다. 충정로에서 내렸다. 어차피 걸으려 했던거.. 별상관은 없다. 대중교통으로 둘을 데리고 나오는게 첨이라 걱정을 했었는데. 의외로 데리고 다닐만 하다. 버스에 유모차 두대 실어야하는 번거로움가 눈치는 있지만서도.

 

날씨가 좋다. 걸을만 하다. 서울역까지 가는 인도는 한산했다. 한참 새잎이 돋는 연두색 가로수가 풍성하다. 김포에 지겹게 불어대는 바람도 없다. 해는 볕이라 할만큼 따듯하고, 찌르지 않는다. 기분좋게 걸을만하다.

한참 걷는 재미가 좋은 준희는 맑은 길을 따라 아장아장 걷는다. 한참 걷기 싫어하는 큰놈은 유모차에 다리꼬고 앉아 뭘그렇게 지껄인다. 시청까지 기분좋은 산책이다.

 

덕수궁 커피숍에 마눌과 준희를 앉혀놓고 건희와 둘이 시청광장으로 간다. 넷이 같이 갈까...하다가. 준희. 아직 무리다. 이제 시작한 집회 구석에 직원 몇이와 잠깐 앉았다가. 아는 사람 몇이 보이길래 인사좀 하고. 금새 철수했다. 아직 어린 아들래미가 좋은 핑계다. 그와중에 누구에게도 인사 한번을 하지 않는 우리 까칠한 큰아들은. 그래도 비교적 따라 다녀줬다. 준희를 짱박아둔 커피숍에 돌아오는데까지. . 30.

 

점심은 무교동 낚지. 오랜만에 온다. 유정낚지. 가격은 살짝 올랐으나. 맛은 그대로다. 애들 먹을 계란말이도 하나 같이 시키고… 물론 시끼들. 안먹긴 했지만서도. 아빠엄마가 맛있게 먹었으니. 그런대로 만족.

식당 옆집에서 커피한잔 들고. 청계천에 앉았다.

졸졸 흐르는 물을 보며, 햇살을 즐기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여유롭게, 싸구려 커피도 맛있고…를 즐기려했으나. 요즘 입터진 건희가 쉴새 없이 재잘대며 쉴새 없이 돌아다닌다. 생각만큼 여유롭지는 못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조금 걷다보니 징검다리가 보인다. 건희가 건너기 놀이를 하시겠단다. 두세번 같이 건너줬더니.. 겁많은 놈이 제법 잘한다. 이제는 혼자 넘어갔다 혼자 넘어온다.

그러더니…… 빠졌다.

맞은 편에서 건너오던 지또래 놈이랑 스텝이 꼬였다. 두놈이 같이 빠졌다. 것도 모가지까지. 상의까지 홀딱 젖었다. 아… 난감하다. 옷도 없는데. 우쩌나.

일단 젖은건 벗기고. 벗어뒀던 가디건을 입히고. 근데 하의가 문제다. 엄마 잠바 대충 둘러서 유모차에 앉혔다. 신발도 젖었으니. 죽으나사나 오늘은 계속 유모차에 앉아있어야 한다. 다행이 신기싫다고 벗어뒀던 양말은 살렸다. 그래봐야 발시린거나 면하는 거지. 실제로 이날 집에 올때까지 이노무시끼 꼬추 덜렁거리며 유모차를 벗어나지 못했다. .. 썩을 노무시끼.

 

이런 건희를 질질끌고 청계천 따라 계속 내려갔다. 중간중간 징검다리를 보고 하겠냐니까… 대답도 안한다. 그렇게 걸어서 동대문까지. 해가 거의 떨어졌다. 두놈다 자꾸 찡얼대는게 배가 고픈가보다. 하긴 점심을 거의 안먹었으니 고프겠지. 두타앞에 도착하니 길에파는 꼬치를 드시겠단다. 떡이랑 햄이랑 구워놓은 꼬치 하나 사주니 큰걸 다먹는다. 안먹을땐 역시 굶겨야하나보다.

 

어느새 7시가 넘었다. 이제 집에가야겠다. 근데. 유모차 두대와, 옷이라고는 반동가리밖에 안입은 하나, 아직 지몸하나 가누지도 못하는 하나를 데리고 김포까지 가려니 막막하다. 철수 경로를 고민하다가. 서울역에서 집까지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동대문에서 지하철 한번 환승씩이나해서 서울역에 도착. 금새 도착한 버스 잡아타고 철수. 맨날 다니면서도 몰랐는데. 요즘 지하철역 좋다. 웬만하면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릴수 있다. 걱정했던 보다 수월했다. 가장 우려했던 버스올라타기…도 건희가 아랫도리에 둘러놓은 지엄마 놓치지 않고 꼭잡고 양말바람으로 올라타줘서 그리 어렵지도 쪽팔리지도 않았다… 매우. 다행이다.

 

10시쯤 김포에 내려서. 오늘의 마무리는 치맥으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치킨집에 앉아 후라이드 한마리 해치웠다.

자슥들 때문에 분주하긴 했지만. 오늘 산책은 기분이 매우 좋다. 유쾌하게 하루가 끝나간다.


몇년도였더라.

우리 마눌이랑 아직 연애중일 태국을 한번 왔더랬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거의 십년전 일이다.

 

강릉 어른들이 단체 해외여행을 가자신다. 술이 알달달하게 취해서 콜을 불렀고, 언니가 추진해서 그렇게 두달만에 방콕으로 출발이다. 이번엔 단위가 차원이 다르다. 어른이 여덟이고, 애매한 하나, 아직 똥닦아줘야하는 꼬맹이 .

준희는 손으로 밥숟갈 못들어서 탈락. 안산에 맡겼다. 태국가서 보니… 맡기길 잘했다. 데려왔음 개고생했을꺼야.

 

. 태국이어야 했는가?

- 어른들이 휴양지는 싫어라 하신다. 오히려 우리는 휴양지를 원했는데. . 매우 활동적이시다.

- 첨엔 베트남이었다. 쌀국수만 삼시세끼 먹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근데. 셋은 무리라는 결론.

- 나올만한데 나왔다. 심지어 일본도. 근데. 애들때매 배낭여행식 도보이동은 불가. 어쨌든 편하게 차로 이동하면서 먹는거 자는거 대우받아야했다. 태국이 만만하다.

- 울마누라 태국 네번째라고 했나… 기를 쓰고 다른 데를 외쳤지만. 대안 없음. 수용 불가.

 

건희한테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놨더니. 기대 만땅이다. 태국을 세계일주 쯤으로 생각하는 수준이다.

 

5.10

9 비행기다. 공항에 5 반에 오랜다. 아침 뱅기라 좋다했더니. 일러도 너무 이르다. 운서역에 차를 버리고. 건희를 유모차에 실어 공항가는 길이 추웠다. 여튼 일찍 도착해서 절묘한 타이밍으로 티켓팅하고 여유롭게. 조금 늦었으면 낭패 했다. 표 들고 나온는데. 줄이 끝이 안보인다.

어쨌든 6시간을 날아 태국 도착. 건희는 의외로 버틴다. 좌석 뒷통수에 붙어서 나불대는 뽀로로가 큰일 했다.

출국장 나오자마자 가이드 만나서 바로 버스 승차. 역시 패키지다. 움직임이 효율적이다. 한시의 낭비도 없이 시간과 일정에 맞춰 차곡차곡 진행된다. 이국에 첫발을 딛을 때의 난감함이나 설래임 따위는 개나 줘버려.


오늘은 일단 숙소로.

높은 호텔이고 높은 층에 방을 받았다. 시설은 그냥 그렇고, 내려보이는 리버뷰는 대박이다.

오후는 짐풀고 호텔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저녁 대충 먹고 시장구경갔다. 사실 시장이라기 보다는 젊은 애덜 노는 쇼핑거리 같았는데. 둘러보니 깔끔하게 놀긴 좋겠더라. 시장 끝은 강으로 이어지고. 저녁시간 강가 북적거리는 맥주집 요란한 음악소리가 살짝 흥분되게도 했다. 우리는 먹거리 포차 골목에서 몇가지 음식을 주워먹었다. 건희가 덥나보다. 얼굴 시뻘개져서 유모차에서 안내린다. 유모차 가져오길 잘했지..


들어오면서 가벼이 마시겠다고 맥주를 몇캔 샀는데. 그날밤 결국은 발렌타인 1리터로 막을 내렸다

가족들 모두 모여. 일상생활의 고단함을 얘기하며.

. 그리고. 술안주 사겠다고 삼십분정도 호텔 인근을 후비고 다니기도 했다. ..살데 엄청 없었는데 결국은 길거리 음식 리어카 하나 발견해서. 돼지와 양념 숯불구이...정도 되는 음식을 조달했다

맛있던데. 특유의 향도 좋고. 막상 술자리에서는 안팔리더라.

 

5.11

죽겠다. 술이다. 호텔 조식 먹는둥 마는둥.

궁궐에 갔다. 사람은 많고, 해는 뜨겁고, 땀은 나는데 바람도 없다. 이런 땡볕을 아직 반쯤 취한 상태로 돌아다녔다. 그래도 볼건 보겠다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녔더니. 죽겠다.

짜장면이 너무 많다. 이번 여행다니면서 느낀건데. 어딜가도 짜장이 널렸다. 시끄럽고 막무가내인건 참아줄 있는데.. 머릿수는 도저히 감당 안된다. 여기 궁궐도 전엔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던 곳이었던 같은데. 줄서서 등떠밀려 다닐라니 .. 죽겠다. 이건 사람구경하러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해도 궁궐 여기저기가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디테일들 하고. 에메랄드 사원의 벽화들 하고... 조금의 여유가 매우 아쉽다. . 짜장면..

 

궁궐을 나와 뱃놀이 간다. 경로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강바람에 땀이 식는다. 기분이 좋다. 비스듬하게 기대어 맨발을 억지로 끌어내 배허리 강물에 쓸어본다. 뱃머리에서 튀어나온 강물이 발에 치인다. 옆에서 구경하던 아들내미가 같은 포즈로 발을 뻗어 튀어오는 물을 걷어차고 히죽댄다. 좋댄다. 짧은 뱃놀이 끝나고 점심은 선상 뷔페. 좋다고 갔더니. 배에 한국 어르신들이 한가득이다막판되니 합창도 하신다. 강건희랑 그의 사촌들은 강남스탈 음악에 춤판도 벌인다. 적응 안된다.

 

오후에 파타야로 이동. 가는길에 눙눅을 들렸다. .. 여기도 짜장판이다. 어딜가나 자꾸 춘장에 허우적댄다. 건희가 그렇게 기대하던 코끼리가 있는 곳인데… 녀석 코끼리 보기도 전에 지쳤나보다. 막상 눈앞에 등장한 코끼리에 관심이 없다. 지친건 코끼리도 마찬가지인 같다. 무한반복으로 관광객들 코위에 올려 들었다 내렸다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카메라에 브이를 날려댄다. 간혹 쇠사슬을 새끼에 달아 목에 걸고다니는 어미가 보인다. 새끼도 힘들어 죽겠다는 자세로 카메라 터지는 옆자리에 아무렇게 널부러져 누웠다. 안스럽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있는데. 갑자기 재현이 아버님이 하늘로 승천하신다.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깜딱이야.

그렇게 코끼리쑈장을 짜장에 밀려들어갔다가 짜장에 밀려 나오면서 눙눅의 넓은 정원을 기대했다. 슬슬 뒷짐지고 걷던 조용한 정원말이다. 근데 가이드가 버스에 밀어넣는다. . 뭐지.. 그러더니 얼마 안가서 내려놓고는 코끼리 타랜다. 이름도 거창한 코끼리 트래킹. 어쨋건 10 정도는 여유로웠다. 건희는 좋아죽겠단다. 아마 건희에게 이번 여행 클라이막스는 10 이였던 같다.

 

버스를 달려 이번에는 게이쑈장에 내려놓는다. 두번은 보고싶지 않은 쑈라.. 마눌이랑 튀어 나왔다. 동준이가 동생들은 커버해주고 있으니. 건희도 두고. 마눌이랑 주변이나 둘러볼라고. 마침 공연장 옆에 재래시장 비스므레한 것이 있다. 나름 길거리 음식 노점들이 푸드코트 마냥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둘러있다. 또다시 모험심 발동으로... 먹어볼까 어슬렁대는데. 먹어야할 모르겠다. 그러다 걸어오는 쥔장 아줌마한테 팟타이 한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제막 노점 펼치는 아줌마한테 망고밥 한접시. 태국에서 먹었던 음식중 맛있었던 같다. 허름한 팟타이와 망고밥. 망고밥은 인터넷에서 극찬 멘트를 보고. 저게 무슨 설마… 이랬는데. 아… 맛있다. 밥이랑 망고랑 연유가 같이 들어가니 이런 맛이 나는구나. 마눌이랑 서로 극찬 맨트 날려가며.

 

그리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심지어 뷔페. 그리고 호텔. 여기 호텔은 나름 모던하다. 여러 단색의 사각이 벽과 가구에 일목요연하게 던져있다. 몬드리안 스탈인가보다. 나름 팝아트 비스므레한 장식품들도 보인다. 로비는 마치 70년대가 꿈꾸던 촌스러운 미래적 디자인 같다. 그런 부담스러운 쇼파들이 조화롭지 못하게 이런저런 컨셉으로 여기저기 꾸며져있다. 뭐… 나쁘진 않다. 이날은 전날 먹은 술을 소화시키기위해 일찌감치 사망.

 

5.12

오전은 산호섬이다. 대단한데라고 아침 일찍 출발한다. 심지어 집에서 나오는 출근시간보다 빠르다. 가이드말이 사람이 많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피해 점점 빨리 움직인댄다. 심지어 새벽에 나오기도 한댄다. 뭔가 아이러니한데. 어쨋건 가이드 채찍질을 받아 모순적인 움직임에 별말 없이 동참한다.

낯익은 해변에서 쾌속정이 시원하게 바다를 달린다. 아빠의 장난기로 뱃머리에 같이 앉은 건희는 수면위로 배가 튀어오를때마다 잼있어 죽겠단다.

그렇게 도착한 산호섬. 오자마자 씨워킹인가 뭔가 잼있다는 꼬임에 어른들은 우루루 빠져나가고, 허리만한 꼬맹이 세명과 시큰둥한 동서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쨌거나 여긴 바다고, 그것도 열대의 푸른 바다. 꼬맹이들은 그걸 즐겨야한다... 강박관념에. 바닷가에 세마리 풀어놓고. 같이 뛰어다녀 준다. 엄청난 스테미너들. 지침이 없다. 끊임없는 공격에 쓰러지고, 뒤쫓고, 쫓기고, 쓰러지고.. 무한 반복한다. 빡세.

강건희는 입으로 튀어들어간 바닷물을 쩝쩝대더니 밝은 표정으로 엽기적인 한마디를 한다.

  - 아. 맛있다.

................ . 난감하다.


그나저나 여기도 온통 짜장에 김치반찬이다. 간혹 카레도 보이고, 햄버거도 보이는데. 티도 안날만큼 짜장이 대세다.

영향이겠지만. 어김없이 사람이 겁나 많다.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목빠지게 기다리던 어른들이 돌아왔다. 잼있었느니 없었느니 한다. 그런 논쟁의 대상이 되기엔 너무 많은 돈을 줬는데. 에휴. 가이드만 노났다. 그러고 좀있다 철수. 뭐니? 뭐긴 패키지지.

 

누나가 가이드랑 뭔얘기하더니 점심먹고는 한참 자유시간이랜다. 호텔 풀장 얘기를 했나보다. 점심먹고 이번에는 풀장에 몸을 담근다. 바다가 보이는 야외풀장. 괜찮다. 사람도 적당하고, 깨끗하고, 바다도 보인다. 밖에서 말많은 짜장에 범벅되어 진빠지느니 이편이 훨씬 좋구나....라고 생각하는데.

비가 내린다.

비맞는 물놀이도 매력적인데. 반동가리 짜리 꼬맹이들에게는 절대 용납되지않는 무모한 ....이라며 엄마들이 철수를 결정한다. . 좋았는데... 날씨까지... 쓰레빠.

 

방에 들어가 샤워하고 밖에 상황을 보니. 맞을만한 비다. 유모차 밀고 동네산책. 건희입에 아이스크림 하나 물려주고, 굴러다니다 사진 몇장찍고, 처마에서 비도 피하다가. 쪼그려앉아 맞은편 포장마차 구경도 하면서 여유롭게.

그러고는 다시 모여 어딜 갔었는데... 트릭아트 갤러리인데. 별로 같잖아보여 한국에서도 안갔던 건데. 멀리와서 여기를 가는구나. 심지어 홍대 애들이 와서 그렸다는데. .

 

성인쑈를 본다며 어른들 두분이 빠지셨다. 에스코트 차원에서 동생네 부부도 따라 붙었다. ...

 

우리는 철수해서 먼저 저녁을 먹는다. 뷔페. 라이브하는 밴드가 한국노래를 연주한다. 앞에서 춤판이 벌어진다. 저녁식사는 김치에 시달리는구나.

 

5.13

오전에 건희랑 풀장에서 잠깐 놀았다. 어제의 강제 철수가 아쉬웠던거다. 그러고는 짐싸서 체크아웃. 오늘은 다시 방콕으로 올라가야한다. 내일이 철수날인 거다.


올라오는 길에 악어농장. 여기는 신기하게 카레가 대세다. 카레들과의 자리싸움 끝에 악어쑈 관람은 실패. 호랑이 쑈는 자리확보에는 성공했으나, 덥다. 너무 덥다. 앉아있는게 곤욕이다. 건희도 보는둥 마는둥. 우리 앉았는 호랑이가 갑자기 토악질을 하더니 그걸 다시 주워먹는다. 스트레스가 심한가보다. 짠하다. 가는데 마다 이녀석들 안스러워서. 이젠 이런 동물쑈 못볼 것같다.


오는 길에 보석가게를 들렀는데. 옥으로 만든 불상이었나. 제단까지 포함한 전시품이었는데. 너무 멋있다. 한참 쳐다본다.

아줌마들은 악세사리 구경에 신났다.

장난 삼아 사주겠다고 사파이어 장식 코끼리를 건희놈이 사야한단다. 건희야... 진심 장난이었다. 진심.


버스에서 퍼질러자고, 방콕 도착하니 저녁 밥때다.

뷔페다. 바이욕타워.

그러고보니 어제부터 어른들이 식사를 못하시는데. 장염인가보다. 뷔페음식 구경도 안하신다. 나도 이상하게 배가 안꺼지고 음식에 손이 안간다. 그래도 나까지 숫가락 놓고있으면 분위기 쳐질것 같아서 몇개 집어먹는데. 안들어간다.

알고보니 나도 장염이다. 몸살 기운도 있다. 이날 저녁부터 몇일간 주구장창 화장실이다.

첫날 묵었던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몸도 안좋고 일찍 자려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한잔한댄다. 잠깐 앉았다 와야겠다...라고 갔다가. 자리 정리하는데 시계를보니 새벽 5시다. 에휴. 술은 많이 안먹었는데. 말이 많았다. 필요한 얘기와 불필요한 얘기가 밤새 이어졌다. 어느 술자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조금 갑갑함은 있었다.

 

5.14

아침 뱅기다. 찬물을 드리부워 감긴 눈을 억지로 뜬다. 부랴부랴 짐싸고. 아침 식사는 생각 없었으나, 내려오니 조금의 시간이 남았길래 건희 밥을 먹인다. 나는 . 화장실 땡긴다.

가이드놈은 어제 바이욕 앞에서 인사하고 사라졌다. 오늘은 바쁜 용무가 있으시댄다. 공항까지는 현지가이드가 따라나선다. 움직이는데 부담은 없다마는.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렇게 공항.

현지가이드에게 연신 땡큐를 날려주고. 면세점에서 건희 장난감 하나 들려주고.

안녕. 태국.

매력적인 나라이긴 한데. 그곳에 가는 우리가 매력적이지 못하게 한다.

패키지 깃발 아래 서있는 나를 두번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치안이 괜찮다고 하니 배낭여행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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