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
muSic (0)
liFe (6)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archive
link
ColorSwitch 00 01 02

늙는건 슬픈 일이다.

머리가 희어지는 단지 어떤 암시같은 것일 뿐이다. 미간과 눈가에 생긴 골이 피부에 고착화 되는 것도 단지 징후일 뿐이다. 신진대사가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입으로 들어온 에너지는 온전히 배출되지 못하고 곳곳에 퇴적층 처럼 쌓인다. 잠깐 긴장을 놓은 사이, 짧은 사이. 주변에 기름끼가 끼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중 가장 악질적인 놈이 배둘래에 붙은 놈들인데, 한번 붙은 녀석들은 그냥 평생 데리고 사는 외에 방도가 없다. 하긴 그 평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단어의 용도만큼이나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어쨋든 남은 말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양보다 기분 나쁜건 재질이다. 푸석해진 표면과 뭐하나 들어내지 못할것 같은 물렁해빠진 근육들.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면 온통 자글자글하게 늘어진 껍데기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팔다리는 점점 얇아져가고 허리는 점점 휘어간다. 특히나 앉았다 일어나보면 구부정해진 허리 제대로 피는데 점점 많은 시간이 든다. 이젠 서있는 자세도 바르지 못한게. 애써 자세를 가다듬어 늙음을 숨길 수 있는 시기도 지나가고있다. 

 

늙는건 슬픈 일이다.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보다 슬픈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진지했던 열정이나 격렬한 사랑 같은 고상한 감정은 고단한 일상에 서서히 좀먹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원인과 동기가 없어진 고집과 집착만이 남아 뭘하는지 왜하는지도 모르는채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한쪽 방향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붙들고있다. 사실 겁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시행착오를 감당할 용기도 능력도 시간도 없다. 그저 숨쉬고 있는 현재를 만들어준 과거의 습관들이 옳다고 믿는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지금이 행복한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지금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어쨋건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럭저럭은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래서 자의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게 점점 힘들어진다. 그리고 남은 시간과 능력이 줄어들수록 그런 의지도 비례해 사라져간다. 그러니 내가 할수 없는 미래보다 내가 있었던 과거에 점점 집착할 밖에 없다. 사실 노인에게 과거는 두번다시 갖지 못할 애달픈 사랑이자, 철저하고 완벽하게 포기해야할 그러나 결코 놓아줄수 없는 미련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래란 견뎌내야할 대상이지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늙는건 슬픈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귀해진다. 그래서 현재 남은 사람이 귀하다.

젊었을 때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는 일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리적 거리 때문에, 심지어는 귀찮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을 떠나 보냈고 반대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가까이 거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는 이가 가는 이보다 적어지고, 이제는 이들을 만났고 좋아하게 되었는 지도 잊어버리게 때쯤이 되면 그렇게 주변에 남은 몇안되는 사람들 서로의 인간적 매력보다는 서로를 외롭게하는 서로로서 소중해진다. 물론 소중함의 표현이라는게 그저 만남을 유지한다는 사실 정도지만. 그러다 어느날 나도 곧 가야할 기약없는 그길을 누군가 떠났다는 얘기를 듣게되면, 이제 한모금 마신 막걸리잔을 실수로 엎어버린 것처럼 무척 아쉽고 허전하고 쓸쓸하다.

가족은 귀하다. 피같고 살같던 내새끼들. 나는 못 먹을 지언정 나는 고될 지언정 새끼들은 배불리 먹이고 편히 살도록 하는데 반평생 이상을 공들였다. 그런 자식들이  가정을 만들고 제 새끼가 만들어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 떨어져 나간다. 언제나 그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종용하고, 번듯한 성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요구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독립을 마주할 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잃는 서러움도 마음 가장 구석진 곳에는 실제하기에. 부모는 늘 자식의 결혼식장에서 운다

그러다 내가 늙고 아이같던 내새끼가  온전한 어른이되어, 보살핌을 베풀고 받는 위치가 서서히 바뀌어갈 , 그때 귀한 아이들에게서 어렴풋한 무시나 직접적인 반감을 받았을 때. 가장 소중히 해왔던 것들이 저들의 몇 마디에 찌질하고 천박한 것으로 전락해 버릴때. 그럴 때의 무기력감이란... 나의 과거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것에게서 나를 부정당하면. 나의 과거가 흔들리고, 현재의 내가 의미없어진다. 인격의 본질이야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를 과거의 축적이 만든 현재의 습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내 전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가 늙었구나.하고 서글퍼지고, 내 삶이 의미없었구나.하고 깊이 낙심한다.


늙는 건 여러 가지 이유로 슬픈 일이다. 사실 이 모든 슬픔의 원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 어떤 희망도 남기지 않는 모든 사람의 유일한 결말. 죽음. 

그 비극의 바로 앞에서. 

너무도 정확히 그 결말을 알고 있으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이를 부정하거나 피할 수 없기에, 

노인의 슬픔은 온전한 절망이다.  










articles
recent replies
notice
Admin : New post